01-21 기죽어 살지말자-비바 5060
[5060의 요즘…] 下. ''기죽어 살지 말자 … 비바 5060!''
지난달 중순 서울 금천구청장실의 전화가 울렸다. 비서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건너편에서 연조가 묻어나는 쇳소리가 났다.
''아, 나 실버 기자단의 김영기 기자요. 구청장님한테 2003년도 노인 복지정책에 대해 취재할 게 있으니 전화 좀 바꿔주시오. ''
''네? 어디 신문사라구요? 어르신께서 기자시라구요?''
전국의 시청.구청 등 관공서는 요즘 '괴(怪)전화'에 시달린다. 목소리는 분명 60대 할아버지.할머니다. 그런데 '무슨 기자단의 아무개 기자'라더니 대뜸 따져 묻는다. 문의도 까다롭다.
관내 노인정책을 묻더니 허술한 쓰레기 처리 정책을 꾸짖기도 한다. 소속을 묻고 나면 더 놀란다. '어르신 기자'는 자신이 인터넷 매체 실버넷의 사이버 기자라고 소개한다.
실버넷(silvernet.ne.kr) 기자단. 노년층에 인터넷 교육을 하는 시민운동단체 '실버넷 운동본부'가 지난해 8월 만든 인터넷 웹진(Webzine)의 실버 기자들이다. 현재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전국에서 13명의 실버 기자가 활약 중이다.
이들은 평균 60대 초반. 현직 목사인 59세 김영기(서울 금천구)기자가 막내고 1999년 대구의 여중학교 교감으로 은퇴한 65세 주종빈 기자가 최고령자다.
하지만 컴퓨터를 다루는 수준은 어지간한 2030을 훌쩍 뛰어넘는다. '디카'(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e-메일로 전송한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서너장씩 땄고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이도 여럿이다.
이들이 보낸 기사를 손질하는 실버넷의 자원봉사자 데스크인 노아실(21.이화여대 국문과)씨는 ''나이 차가 40년이 나지만 열린 마음으로 젊은 문화를 받아들여 세대 차이를 못 느낀다''고 말한다.
정부가 2000년부터 55세 이상 노년층에 컴퓨터를 가르친 이후 15만여명의 노년층이 컴퓨터를 배웠다. 이에 따라 노년층에서도 '컴퓨터 도사'가 나타나고 있다.
이들 중엔 불우한 이웃이나 동료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휠체어 장애인에게 컴퓨터 방문 교육을 하는 변노수(62.서울 마포구)씨도 이들 중 하나다.
변씨는 전국 노인 인터넷 정보검색대회에서 세차례나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도 98년 회사에서 은퇴하기 전까지는 컴퓨터를 전혀 몰랐다.
'당당하게 벌어 떳떳하게 살겠다'는 5060도 많다. 노년층에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시니어클럽'엔 일자리를 문의하는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전국에 20여개 지부가 있는 시니어클럽은 65세 이상 노인이 일하기에 적합한 지하철 택배.베이비 시터(보모).숲 안내인 등 '틈새 일자리'를 주선한다.
1995년 간호사로 은퇴한 김용희(63.여.경기도 수원)씨도 최근 새 직업을 가졌다. 서울 종로시니어클럽에서 소개받은 베이비 시터 일을 나간다. 그는 ''집에서 가만히 있어 보니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간호사로 평생을 살아온 전문직이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새 일을 하면서 활력을 되찾았다고했다. 하루 종일 아기를 돌보고 받는 수입은 보통 5만원. ''일을 해서 번 떳떳한 수입''이란 생각에 기분이 뿌듯하기까지 하다.
또한 서울시립 금천노인복지관 탁구팀처럼 동호회활동, 문화 동아리 등으로 건강과 보람을 찾는 5060들도 늘고 있다.
금천복지관 탁구팀의 윤상희(67)씨는 ''탁구를 하고 난 뒤 생활이 모두 의욕적으로 바뀌어 복지관에 나와 탁구 외에도 요가, 바둑 등 여러가지를 배우며 힘차게 지내게 됐다''고 전한다. 식욕이 나고 배가 들어가는 등 건강이 크게 좋아진 것은 물론이다.
대한은퇴자협회 원미희 총무국장은 ''우리 협회 회원 3만7천여명의 경우 소모임을 꾸려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평균 수명 75.6세(지난해 기준)인 세상에서 5060은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해 활력을 유지하고 또 각자의 경륜을 사회를 위해 쓰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비바(Viva)! 5060'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 2003-01-18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2003-01-21 09:46:30

